단국상의원

삼베수의는 전통이 아닌 일제에 의한 강제적 규정입니다.
이제는 일제 잔재인 지금의 장례문화를 털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해야 할 때입니다.

전통장례의식에서 수의는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 다시 말해 관리는 관복을, 선비는 유학자들이 입던 하얀 심의를, 여성은 혼례복 등으로 입던 원삼을 사용했습니다. 소재는 모두 누에고치의 실로 만든 비단이나 명주 또는 목화로 만든 무명이었습니다.

1474년 조선 성종 때 완성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염습 절차는 습(襲·수의를 팔다리에 끼워 입힘)을 한 뒤 옷과 이불로 시신을 감싸서 끈으로 묶는 소렴(小斂)과 대렴(大斂)의 순서로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때 수의는 (비단·명주 등) 견직물을 쓰고 소렴과 대렴을 할 때에도 군주가 경사스런 의식에 착용했던 붉은 강사포나 제례를 지내며 입던 면복 등 최고 등급의 견직물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조선시대 분묘를 이장(移葬)하거나 개발 등으로 발굴하는 과정에서 비단, 무명, 모시로 된 수의를 다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발굴되는 분묘는 대개 회삼물로 회격(灰隔)처리를 잘 한 경우이고, 두꺼운 회격처리는 경제력이 있는 양반가문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은 회격묘를 쓸 수 없었고 관 안에 비단수의를 넣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마로 만든 삼베수의는 매우 가난한 백성 일부나 사용했을 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때문에 삼베로 수의를 하면 “오죽하면 삼베수의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삼베옷은 고인의 유가족들이 입는 상복의 소재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고인과 혈연적으로 가까울수록 거친 삼베 상복을 입어서 슬픔이 크다는 것을 형상화했습니다. 이렇듯 고인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비단옷을 입혀드리고 유족들이 거친 삼베옷을 입던 우리의 문화는 조선의 전례서인 <국조오례의>에 명문화된 이래 면면히 이어져왔고, 가족과 친지와 이웃사촌이 모두 모여 슬픔을 함께 하던 전통은 긴긴 세월 이어온 우리의 자랑스러운 장례 전통이었습니다.

단국상의원은 조선시대 분묘에서 발굴된 수 천점의 출토복식(出土服飾)의 전문가 고증과 더불어 전통상조의 현대적 계승을 위한 전통의상 전문가들과 서예가, 동·서양화가, 조각가 등이 힘을 모아서 품위있고 세련된 전통예복(수의)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습니다.

‘단국상의원’은 단국대학교의 전통복식문화 복원 및 계승사업의 일환으로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 감성을 더하여 만든 명품 수의로 대한민국 전통수의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장례복식문화를 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