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상의원

삼베수의는 전통이 아닌 일제에 의한 강제적 규정입니다.
이제는 일제 잔재인 지금의 장례문화를 털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해야 할 때입니다.

삼베수의는 1934년 조선총독부 의례지침에 따른 일제 잔재
삼베옷은 본래 조선의 죄수나 노비가 입던옷

삼베옷은 본래 조선의 죄수나 노비들이 입던 옷으로서 살아생전 이 옷을 입는 것은 가장 천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일제가 이를 수의로 입도록 강제한 것은 우리전통문화를 격하시키기 위한 의도 였습니다.

삼베수의, 완장, 리본 등을 규정한 1934년 조선총독부의 ‘의례준칙’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삼베수의가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잘못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1934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가 『의례준칙(儀禮準則)』을 발표하여 비단과 명주 사용을 금지해버리고 삼베수의를 입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격하시키기 위한 것으로 오늘날 상주 등 유족이 팔에 차는 완장과 왼쪽 가슴에 다는 리본 또한 이 의례준칙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시행한 것입니다.

고인이 입관한 뒤 묘소까지 누워 이동하는 상여(喪輿)에 장식하는 화려한 종이꽃 외에는 상가에서 생화를 사용하지 않는 게 우리 전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는 근조화환(謹弔花環)을 상가에 세워놓는 풍습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1926년 순종황제의 국장 장례식 사진첩에서 영좌 주변에 나무로 된 화환이 놓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는 영좌를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菊花)로 장식하는 일본 문화마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좌 뒤에 병풍(屛風)을 세우는 게 전통이었으나 병풍 대신 일본식 국화꽃을 장식하는 풍토로 변질된 것입니다. 물론 헌화나 화환 문화가 당초 서양에서 출발한 기독교 문화라고 볼 수도 있으나, 장례식장에서 꽃장식조차 완전히 일본 황실 상징꽃을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인에게 삼베수의를 입히는 것은 전통상례문화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국적없는 문화인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베수의가 일제 잔재 인줄 모르고 전통으로 착각해 삼베수의를 준비하거나 상조업체 및 장례식장에서 권하는 삼베수의를 쓰고 있는데 이는 부모형제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전통복식 전문가인 최연우 단국대학교 대학원 전통의상학과 교수는 “삼베수의(壽衣), 영정사진, 유족 완장과 리본을 비롯해 영좌(靈座: 영위(靈位)를 모셔 놓은 자리) 꽃장식까지 광복 70년이 넘도록 여전히 일제 잔재가 장례문화에 남아있다”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일제가 시행한 삼베수의가 우리 전통인 비단(緋緞)수의를 밀어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수의 재료, 완장, 리본 등을 규정한 1934년 조선총독부의 <의례준칙(儀禮準則)> 이후 삼베수의가 확산돼 오늘날에는 “삼베수의가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잘못 인식하게 됐습니다.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제가 강제한 치욕스런 문화를 오히려 전통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